살다 보면 잊고 싶은 기억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후회되는 말과 행동, 실패한 경험,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 혹은 더 이상 붙들고 있어도 소용없는 감정까지. 머리로는 “이젠 그만 잊자”고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기억에 머물러 하루를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기억은 시간만 흐르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같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아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잊는 방법을 알고 싶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덜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덜 아플까, 어떻게 하면 마음이 가벼워질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억은 버튼 하나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며, 억지로 지우려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잊는 것처럼’ 살아갈 수는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완전히 지우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흔들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잊고 싶은 기억을 조금은 덜 아프게, 덜 무겁게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잊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무언가를 반드시 잊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그 기억에 더 집착하게 만듭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그 기억은 더 자주 떠오르고, 이내 감정은 피로해지기 시작합니다. 기억은 억누를수록 되살아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을 억지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에 의미를 덜어내는 작업입니다. 더 이상 그 기억이 지금의 감정과 삶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기억을 완전히 수용하고,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지나간 사실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2. 생각을 없애려 하지 말고, 분산하는 연습을 하세요
기억을 잊는 데 있어서 많은 분들이 시도하는 방식은 생각을 없애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떠오르는 생각에 저항하기보다, 다른 생각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생각이 반복될 때는 산책을 하거나, 손으로 무언가를 써보거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활동에 몰입해보세요. 그 과정에서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억제하려 하지 않고, 생각의 통로를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연습은 곧 감정의 흐름을 조절하는 기술로 이어집니다.
3. 감정은 기록하면 약해집니다
강렬한 기억은 대체로 강한 감정을 동반합니다. 기억 자체보다 그때의 감정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흐릿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그 감정을 글로 적어보는 것입니다.
내가 왜 상처받았는지, 어떤 말이 아팠는지, 어떤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지를 구체적으로 써보세요. 이 기록은 머릿속에서 반복되던 감정의 회로를 분해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쓰다 보면 감정이 처음보다 훨씬 덜 강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글로 적는 것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서 치유의 시작이 됩니다.
4. 자주 떠오르는 장면에는 ‘해석’을 바꿔주는 것이 좋습니다
기억은 사실보다 해석에 의해 더 오래 남습니다. 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강도는 달라집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기억 속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이 나를 무너뜨렸다면 “그 사람이 틀렸다는 증거를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을 바꿔보세요. 상처는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의미를 잃습니다. 기억을 없앨 수는 없어도, 그 안에 담긴 해석을 내가 다시 쓸 수는 있습니다.
5. 반복해서 회상되는 기억은 뇌가 ‘정리하지 못한 감정’입니다
자주 떠오르는 기억은 아직 감정적으로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별, 실수, 상실과 같이 큰 감정이 수반된 사건은 단순히 시간만 흐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그 감정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풀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거나, 글로 풀어내거나, 상담 등 외부 자원을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감정을 완전히 다루지 않고 억눌러두면, 그것은 반복해서 떠오르는 방식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게 됩니다. 잊는 것은 감정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다룬 뒤에야 가능한 결과입니다.
6. 기억은 덜어낼수록 삶에 자리를 비워줍니다
머릿속이 가득 찬 상태에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잊지 못한 기억은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며 새로운 감정, 새로운 관계,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일 여유를 줄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잊는다’는 건 과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무언가를 잊고 나면 반드시 무언가가 새로 들어옵니다. 덜어내야 채울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붙들고 있는 기억 때문에 지금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면, 그 기억을 잠시 옆으로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은 여전히 현재에 존재하며, 그 삶을 위해서라도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7.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기억은 다른 선택을 통해 의미가 달라집니다
과거의 일이 지금도 나를 아프게 만든다면, 그 사건이 아니라 내가 그 뒤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도, 그 후에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기억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사람이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 기억은 고통이 아닌 성장의 이유가 됩니다. 기억을 지울 수 없다면, 그 뒤에 더 나은 선택을 쌓아보세요. 그렇게 기억은 방향을 잃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됩니다.
8. 잊는다는 건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흐리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잊는다는 것을 마치 완전히 삭제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기억이 떠올라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무뎌질 수는 있습니다.
이는 ‘잊은 것처럼 살아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힘은 무리한 노력보다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납니다. 기억을 잊으려 하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게 됩니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살아가는 방향입니다.
마무리하며
잊는다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들이고 감정을 정리하며, 내가 지금 살아가는 방향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기억은 힘을 잃고 흐려집니다. 억지로 지우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조금씩 거리두고, 덜어내고, 새로운 의미를 더하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그 기억을 ‘그럴 수도 있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잊는 건 간단합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짜 잊는 힘입니다.